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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茶饭事

독립다큐멘터리 베리타스 (하버드의 진실) 상영회

Time
10 June · 19:00 - 21:00

Location
전남대학교 용봉문화관 4층 시청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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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다큐멘터리 베리타스 광주 상영회 3th

□ 일시 2011.6.10(금) 저녁7시
□ 장소 전남대학교 용봉문화관 4층 시청각실
□ 주최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전남대분회
학벌없는사회 광주모임
□ 내용 베리타스 상영
감독과의 대화 _ 미국현지 스카이브 연결
□ 신청 http://j.mp/kNeXy0 / 선착순 200명
□ 문의 070. 8234. 1319 / 무료상영

□연출의도

세 계 최고의 명문으로 손꼽히는 하버드 대학. 고급교육과정의 최고 브랜드로 평가받는 하버드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다. 오바마 現 미 대통령을 포함 지금까지 8명의 미 대통령을 배출했고, 미국을 움직이는 고위층 인사들의 상당수가 하버드 출신들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유명학자와 정치인들이 하버드를 다녀가기 때문에 사실상 하버드는 전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 지만 하버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극히 피상적이고 막연하다. 본 다큐멘터리는 하버드가 오늘의 제국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고, 하버드가 세상에 미치는 역할과 영향력을 비판적 시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펼쳐진 냉전구조 속에서 하버드를 비롯한 미 대학들이 어떻게 체제 유지에 동조해 왔는가를 집중 조명하고, 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하버드가 지역사회와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냉철하게 들여다본다.
MIT의 노엄 촘스키 교수를 비롯한 미 진보 지식인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통해 오늘날 하버드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이며, 진정한 대학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시놉시스

# 프롤로그...하버드 투어, 하버드 동상에 얽힌 세 가지 거짓말
미 메사추세츠 주 캠브리지에 위치한 하버드 메인캠퍼스 하버드 야드.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하버드 재학생과 함께 캠퍼스를 돌아보는 투어가 매일 열린다. 다큐멘터리는 투어를 따라가며 하버드의 다양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시작된다. 투어의 마지막은 하버드를 상징하는 존 하버드 동상 앞, 여기서 가이드는 동상에 얽힌 거짓말을 알려준다. 동상에 적힌 하버드 설립년도와 설립자표기, 그리고 동상의 모델역시 존 하버드가 아니라는 것. 하버드 심장부에 위치한 상징물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질문을 던진다.

# 최고의 명문 하버드의 현주소와 영향력
하버드는 무엇인가에 대한 진보적 지식인들의 인터뷰로 시작, 하버드의 규모, 자산, 화려한 인맥 등을 분석하고 하버드가 미치는 글로벌한 영향력을 간략히 훑어본다.

# 하버드의 역사와 성격
1636 년 영국 식민지 시대 청교도 목사 양성을 목적으로 출범한 하버드 대학. 1650년에 헌장이 수립되고 하버드 법인이 출범한다. 총장을 포함 7명으로 이뤄진 하버드 법인은 서구 최초 법인으로 대학 내 주요 결정이 이들에 의해 이뤄지며 비민주적 운영방식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Rich, White, Male로 정리되는 전통적 하버드 캐릭터를 분석한다. 1912년 방직공장이 밀집해 있던 로렌스에서 일어난 “빵과 장미” 파업. 하버드는 “계급을 사수하라”는 모토아래 파업진압에 동참한 학생들에게 시험을 면제해준다. 하버드의 보수적 인종주의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우생학을 발전시키고 이는 1924년 이민제한법과 1930년대 30여개 주에서 통과된 강제불임법의 근거가 된다. 미국의 우생학은 마침내 유럽으로 번지고 독일의 나치즘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대대로 남성만의 대학이었던 하버드. 여성은 여성교육기관인 레드클리프에서 따로 수업을 받았고,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여성도 하버드에 직접 진학할 수 있게 된다.

# 2차 세계대전과 대학의 역할변화
2차 세계 대전은 미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었고 이런 변화는 대학에도 반영된다. 1944년 G.I. Bill of Rights(제대군인 원호법)이 제정되면서 수많은 병사들이 대학으로 몰리고 이는 미 대학들의 급속한 성장으로 이어진다. 학문 활동은 미소의 사활을 건 무기경쟁에 힘입어 급속히 성장하고 미 정부의 대학지원은 급격히 증가한다. 하버드 출신들은 미국의 국가안보 전략을 세우는데 주요역할을 하게 된다. CIA와의 공조아래 세워진 MIT의 국제연구센터(Center for International Studies)와 하버드의 국제문제연구소(Harvard Center for International Affairs)등을 돌아보고 냉전시대 이들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를 짚어본다. 냉전의 또 다른 산물은 미 대학들의 지역학 연구(Area Study). 미 정부의 정치적 필요성에 기반을 두고 CIA의 전신인 OSS 요원들에 의해 시작된 하버드 지역학 연구의 역사를 파헤친다.

# 하버드맨이 중심이 된 외교압력단체들
CFR(미 외교관계협의회), 삼각위원회, CPD(현재의 위험위원회). 이름과 성격은 다르지만 하버드 맨이 주축이 돼 결성된 외교압력단체라는 점에서 이들은 일맥상통한다. 미 외교정책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해온 이들 단체들의 역사와 역할을 간략히 짚어본다.

# 60년대 반전운동과 대학의 위기
60 년대 초 가열된 민권운동은 이후 반전운동으로 이어지고 학생과 지식인들은 대학이 체제유지에 공모하는 것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하버드의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과 헨리 키신저 등 하버드맨들의 베트남 전쟁에서의 역할을 살펴본다. 또한 1969년에 일어난 최초의 하버드 점거 농성과 관련해 하버드 민주사회연합회(SDS) 공동의장이었던 마이클 앤세라의 생생한 증언을 담는다. 당시 미국 사회 전역을 휩쓸었던 반전운동의 열풍과, 그로 인한 대학의 변화과정에 주목한다.

# 신자유주의 등장과 대학의 변화
반 전운동의 열기가 소강될 무렵 미국은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을 시작한다. 72년 일어난 최초 대학원생 파업, 74년 하버드 매니지먼트의 창립 등 하버드가 신자유주의로 전환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육칠십 년대 사회운동의 결과로 일어난 하버드의 외형적 변화와 본질적 한계를 추적하고 오늘날 하버드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엘리트 커뮤니티 형성의 중심인 케네디 스쿨과 지역학 연구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 하버드의 글로벌한 영향력, 러시아 민영화 과정
1991 년 소비에트 해체 이후 러시아 민영화 과정에 개입한 하버드 국제개발 연구소, HIID. HIID가 세운 러시아 민영화 센터는 미 국제개발국, 유럽, 일본, 세계은행 등으로부터 수천만 달러를 제공받고 이 돈은 HIID가 각종 재단을 설립하는데 쓰이면서 유용된다. 미 국내에서는 거의 보도조차 되지 않은 이 사건은 하버드 커넥션을 중심으로 한 부정과 부패의 압축판을 보여주었다. 뒤늦게서야 미 정부의 조사가 시작되었고, 2000년 소송이 시작돼 2005년 하버드는 총 삼천 백만 달러의 벌금형에 합의한다.

# 하버드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도전한 2001년 점거농성
2001 년 일어난 하버드 학생들의 또다른 점거농성은 하버드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한 사건이다. 하버드 학생들은 서비스 노동자들의 생활임금 쟁취를 위해 투쟁을 벌였고, 학교측이 협상을 무시하자 총장실이 있는 메사추세츠 홀을 기습점거한다. 학생들은 21일 동안을 건물 안에서 버티며 농성을 벌였고 지역사회와 언론의 압력에 떠밀린 하버드는 결국 학생들의 요구안을 받아들인다.

# 하버드와 위험투자와 2008년 금융위기
신 자유주의 아래 매년 몇 배씩 자산을 불려온 하버드. 2008년 전 세계를 휩쓴 미 금융위기로 하버드는 30%에 가까운 자산을 손실한다. 2010년 발표된 한 보고서는 하버드를 비롯한 대학들의 위험투자가 금융위기를 부채질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하버드는 높은 투자수익에도 대학기관이라는 이유로 세금을 면제받아왔고 면세특혜를 이용 빚을 내 이를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자산을 불려왔다. 2008년 기금 손실의 결과 하버드는 천 여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고 캠브리지에 인근한 올스톤, 브라이톤 지역에 진행중이던 공사를 중지시킨다. 하버드의 위험투자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사회로 전이된다.

#에필로그: 베리타스
베리타스는 라틴어로 진리, 진실을 뜻하며 하버드를 상징하는 문장이다. 하버드 건물 곳곳에 장식된 베리타스 문장은 진실에 대한 하버드에 대한 집착과 자부심을 증명한다. 하지만 하버드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하버드는 진실보다는 돈과 권력을 쫓기에 바빴던 것 같다. 진정한 고등 교육의 목적은 무엇이며 하버드의 실체를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상기하면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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