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가려고 정리하다가 책 사이에서 나온 A4지 한장..
아직 내집이라고 내 물건 가득 넣어놓고 살 공간이 없으니 최대한 가진것 없이
여행 가방 하나정도의 짐만 가지고 이곳을 떠나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물건들과 짐 사이
이 책도 버릴까 말까 고민하는데 책 사이에서 나온 A4지 한장..
그냥 버려버리기에는 A4지의 글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았다..
"이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그림을 보고, 들리지 않는 노래를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래는 작품 설명 A4지에 있던글..
A4지에 있는글.. 읽다보니 공감과 감동에 일단 그대로 옮겨 놓습니다.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되면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라지거나 돌아오거나 그 사이 어딘가에 있거나 - 안규철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사라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처럼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없다. 우리 주위에 있던 모든 것들은 서서히 또는 갑자기, 돌이킬 수 없이 사라져버린다. 있던 것이 없는 것으로, 존재가 부재로 변하는 이 놀라운 마법 앞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운명을 본다. 지금은 주위의 것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지만 언젠가는 우리 스스로가 이 익숙한 세상으로 부터, 가까운 사람들로 부터 속절없이 사라질 것이다. 실종, 상실,이별,멀어짐,사라짐,잊혀짐..
이것은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고 또 모든 이야기의 끝이다. 사실 이 이야기를 빼고는 어떤 이야기도 없을지 모른다. 사물들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 이대로 영원히 그 자리에 있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무언가가 끊임없이 사라지는 블랙홀이기 때문이다.
8년전 세상을 떠난 박모는 지피에스 발신기를 병 속에 넣어 태평양에 띄워 보낸 적이 있다. 발신장치에서 나오는 전파신호는 인공위성을 통해서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그 병위 위치를 알려주었다. 며칠 뒤 발신기의 배터리가 소진되어 신호가 끊겼고 유리병은 태평양 어딘가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남은 것은 그것을 바다로 떠나 보낼 때 찍은 무심한 푸른 바다의 사진 한 장, 그리고 이 작업을 구상살 때 그린 간단한 연필 드로잉뿐이다.
그것은 얼핏 보면 바다 건너의 누군가에게 언젠가 전해지기를 기대하며 사람들이 바다에 던지는 병 속의 편지와 비슷하지만 애초부터 다른 사람에게 그런식의 메세지를 전하겠다는 낭만적인 의도 자체가 없는 점이 다르다. 그거슨 오히려 태평양 한복판에서의 실종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으로부터의 결연한 퇴장을 목표로 한다. 지피에스는 여기서 이 유리병이 인공위성으로도 추적될 수 없는 지점으로 넘어갔을을 확인하고 입증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 작업을 발표하고 나서 몇 년 뒤게 작가도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이것은 대서양으로 작은 보트를 타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네델란드 작가 바스 얀 아더와 비슷한 유형의 자발적 실종을 보여준다.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그 단호한 결별의 대상이자 무력한 증인이 된다. 나는 작가의 실종 자체가 예술적 행위가 되는 이 강력한 퍼포먼스 이후에 무엇이 더 가능한가? 하는 질문을 오랫동안 떨처버릴 수 없었다. 그들은 바다로 떠났다.
도시는 수많은 사람들과 거리의 집과 기억과 소음과 냄새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바다다. 회환과 열망, 그리운 것과 잊혀진 것들, 남아있는 것과 떠나가는 것들이 하나의 커다란 흐름 속에 뒤섞이는 이곳에서, 배를 띄우고 저 너머의 누군가에게 도착할 병 속의 편지를 쓸 수도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7월 27일부터 3일 동안 광주에서 바다풍경을 그린 2백 개의 캔버ㅡ와, 테라코타와 레진으로 만들어진 2개의 별이 수백 개의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져서 이 도시 곳곳에 흩어졌다. 어떤 것들은 공원과 아파트 단지와 뒷골목에 버려졌고 어떤 것들은 주택가 우편함과 대학 캠퍼스와 시장에 무작위로 던져졌다. 부서진 별의 파편들에는 그것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 위에 뭔가를 쓰거나 그려서 반송해달라는 안내문이 첨부되었다. 반몀에 그림들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버려졌다. 해체되어 도시 속으로 던져진 이 이미지의 파편들은 미수의 맥락 밖에서 미술품으로서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에 놓인다. 자발적인 실종의 은유로서, 그것들은 이 도시에서 사라지거나 돌아오거나 또는 그 사이의 어딘가게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도시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도시에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수많은 이면과 빈틈이 있다. 우리의 눈길이 머몰고,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시적인 영역이 있다면, 그보다 훨씬 더 큰 부분은 보이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 빈 공간들에 뭔가를 버리거나 숨기면서, 이것이 범죄의 증거를 은폐하거나 적어도 무단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작품을 파괴하고, 그것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장소로부터 가장 먼 곳에 유기하고, 나의 소유였던 것을 누구의 동의도 허락도 없이 포기하고, 예술을 쓰레기로 만드는 죄
추락한 별들의 파편, 한 때 소용돌이치는 파도였던 것의 잔해들, 땅에 떨어져 깨진 구름 조각들..
20일 뒤 지역신문에 광주비엔날레 작품이 분실되었다는 분실공고가 나갔다. 이 도시 곡곳에 흩어진 작품의 파편들 중 일부는 전시장으로 되돌아오고 나머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관객은 이 작품을 전시장에서 완전한 모습으로 보지 못한다. 상당수의 캔버스가 돌아오지 않은 채로 전시가 시작되고 또 끝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 도시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상태로 사람들의 이야기와 상상과 기억 속을 떠도는 또 하나의 소문이 될 것이다.
돌아오는 파련들을 모아서 그 형상의 원형을 복원한다. 별의 파편들도 상당부분이 회수되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은 자리는 석고로 채워 넣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흔적이 담겨있는 누더기 별들이 생겨난다.
몇 개의 파편이 돌아오고 몇 개가 실종상태로 남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광주라는 도시 속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 하나의 이야기로 , 하나의 기억으로 남는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그림을 보고, 들리지 않는 노래를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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